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남의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나의 뜻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권유가 컸다. 


어찌보면, 학부법대를 선택하게 된 것에도 그리 깊은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외무고시를 볼까 했었는데 그러려면 법대가 좋다는 아버지의 권유에. 
여기에도 아버지의 권유.


솔직히 말하면 법대오기전에는 판사랑 검사도 제대로 구분못했고,
서울대 로스쿨에 오기 전까지는 로펌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6대로펌은 당연히 모르고) 변호사가 뭔지도 몰랐다. 

사법시험이 뭔지도 몰랐고..



그렇지만, 직업으로서의 변호사가 매력적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몇 번 있었다.


1.
최초의 계기는, 법무법인 태평양 설립자인 "김인섭"변호사의 신입생 특강때였던 것 같다.
의사나 법조인은, 국가의 기초적인 기능수행을 돕는 '준'공무원의 신분이므로, 국가가 자격관리를 하는 것이고, 같은 이유로 영리를 추구보다는 국가전체를 봐야 하는 직업이라고.
공무원도 아닌데 공적이라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2. 
두 번째 계기는, 역시나 영화 "필라델피아"
톰행크스보단 덴젤워싱턴이 훨 매력적이었다.
되는거 안되는거 뭐든지 소송하는 변호사. 
이 영화는 최소한 네 번은 봤는데
첫번째 두번째 봤을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봤고
세번째 봤을때부터는, 아, 형식적으로는 능력부족을 해고사유로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에이즈를 사유로 한 해고라고 본다면, 그것은 정당한 이유없는 차별이 되어서 부당해고구나..라는 것을 생각했다.

매력적이지않은가? 헌법이라니. 그 헌법이 해고를 부당한 것으로 규정짓다니.


3.
세 번째 계기는, 사시를 접은 08년 말부터, 고려대 국제공익법률상담소에서 박경신 교수님과 함께 일했던 시기였다. 
사시공부할때만 해도, '변호사는 걍 돈버는 애들, 검사는 권력에 빌붙는 놈들, 판사는 내 적성이 아니야!' 정도로 생각이 얕았는데... 참 얕았다..

변호사가, 그냥 돈만 버는 사람들이 아니라, 헌법속에서 움직이며 때론 헌법도 넓혀가며, 때로는 돈도 벌며, 때론 집회도 나가고 일인 시위도 하고,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고, 배웠다.

집회나가서 짱돌 드는 사람이 있는거고,
법정에 나가서 두뇌와 혓바닥과 펜대로 싸우는 사람이 있는거지.

아 그렇구나. 


4.
이 길에 들어선 것이 후회스러웠다. 지금도 크게 자랑스럽거나 만족스럽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남의 중요한 일을 맡아서, 승리를 담보해주어야 하는 것은 엄청난 심적 부담을 안겨준다. 

법조직역은, 의사도 마찬가지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대로 중인들이 해왔다. 판사 말고. 법조직역.

적성에 그닥 맞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의 미약한 지능과 이해력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보람을 준다. 정말로 나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데, 좋은 부모를 만나 적당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남을 돕는 사람이 될 수 있다니?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신기하고 놀랍고, 두려울 따름이다.



5.
결정적으로 법조인이 되어야겠다는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이 세상의 많은 부조리들, 사실 정말 별것도 아닌, 전문가의 도움이 있다면 쉽게 해결 될 수 있는 일들로부터 비롯됨을 보았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사람들에겐 정말 불편하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원스탑으로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나처럼 머리가 좀 떨어져도,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하면, 그런 더러운 꼴을 갈아 엎을 수 있는 직업이, 법조인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왔기에, 크게 출세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도 없고, 판검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미약한 능력을 쓸 수 있는 곳에 열심히 쓰는 것만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자고.



윤여준의 "대통령의 자격"도 같이 샀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주로 폭식을 하는데,
아주 가끔씩은, 책을 폭풍구매하고 읽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 때도 있다. 정말 아주 가끔.
7.
오늘 다시 한 번 머리가 띵해졌다.
공부스트레스로, 서점에 가서 책을 보았는데, "그남자 문재인"
변호사 문재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문변에게 어떤 누가 와도,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음'을 기억한다. 공통적으로.

나처럼 멍청해서 얘기를 듣고 또듣고 이해못해서 또듣고 하는게 아니라.. -_-...
사실 변호사들은 그런 말을 종종 한다. '악성 민원인'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변호사 사무실마다 돌아다니면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 
해고 노동자. 돈 없는 사람. 수감자. 그런 사람들 얼마나 하고 싶은 말들이 많고 억울할까.

그러나 전문가가 되면, 말을 잘 끊고, 듣고 싶은 말, 필요한 말만 요구한다. 그게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 그 사람들에겐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이러한 마음가짐은, 내가 법조인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 계기와도 맞닿아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마음가짐.



8.
다시 초심을 찾는다.
어떤것도 바라지 않고 이 길에 들어섰다. 
나의 마음은, 오아시스 없는 황무지와도 같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그리고 법조인이 된 후의 하루 하루를 보람되게 살아가고자한다.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초심이었고, 또 마지막 마음이 되길 바란다.

다이어리에 쓴 2012년 목표가 '남의 말을 끊지 말자'였다
.
친구들 말도 이렇게 잘 끊는데, 앞으로 의뢰인 말은 얼마나 잘 끊게 될까. 
그러지 말자. 
누구의 말이든 잘 들어주자.







댓글 3개:

  1. 느낀 바가 많다. 고생하고 1월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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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ttp://blog.naver.com/kyungsinpark/110152188264

    이 이야기도 들어주실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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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교수님 ㅋㅋㅋ 뭐하세요...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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