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
*저자는 남한과 북한 이전에 유사이래 우리 민족을 일컫을만한 적절한 명칭을 찾을 수 없어 '코리아'라는 표현을 쓴다.
1. 저자의 핵심 생각
저자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요구한다. 코페르니쿠스 운운은 너무 자주쓰여서 식상해진 표현이지만, 원래 의미를 다시 짚어보자. 그는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돈다는 '천동설'에 도전하여, 지구의 중심은 우주가 아니고 단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이다.
그렇다. 역사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론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역사는 힘있는 자들을 위주로 돌아갔다.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언제나 그 수단으로 더 많은 물리력의 확보를 요구해왔다. 경제적 욕망은 폭력의 확보로 이어져왔다. 역사를 변화시키는 주체는 코리아가 아니다. 약자도 아니다. 노동자 계급도 아니다. 패권국이다. 역사는 패권국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예측하여야 한다. 패권국의 어깨위에서 세상을 보아야 비로소 완벽한 조망을 할 수 있다. 지하실에서 보이는 풍경과, 펜트하우스에서 보이는 전망이 다르듯이.
그렇다고 이완용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그렇게 보라는 것이지, 그렇게 역사를 '쓰라'는 것이 아니다. 패권국 중심으로 바라보아야 정확히 보인다는 것이지, 그렇게 '생각'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당신의 '가치관으로 삼으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보는 것은 판단하는 것의 시작일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 그 냉철한 분석을 토대로 우리의 선택지를 예측하고, 결정해야 한다.
2. 대-분단선을 따라 춤추는 한국 역사
코리아 민족에게 있어 분단은 낯설지 않다. 유사이래 북쪽에는 (고)'조선'이 있었고, 남쪽에는 '한국'(마한/진한/변한으로 대표되는 국가들)이 있어왔다. 조선의 멸망 이후의 한사군 설치, 이후 고(구)려와 백제/신라의 대립, 신라주도 통일 이후 당나라의 침략, 발해의 등장, 고려의 재통일과 거란/여진과의 대립, 몽골의 침략, 조선의 건국과 명/여진과의 대립, 임진왜란, 청나라의 침략, 열강의 침략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이후 휴전선까지 반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분단선은 낙동강, 금강, 한강, 임진강,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을 따라 끝없이 움직였다. 분단은 우리에게 있어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왜 그러한가? 코리아가 반도국가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구분에 따르면 대륙-농경(중국), 대륙-유목(유목민족-러시아), 해양-일본, 해양-서양의 4가지 세력의 패권이 부딫히는 곳이 코리아다. 고조선이 강성했을때 대동강 유역부터 요동, 요서, 산둥반도를 영향권에 두었다. 고구려 또한 요동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요서를 위협했다. 고려와 조선초기에는 요동경략을 눈독들였고, 실제로 옛부터 요동에는 많은 코리아인이 살아왔다. 요동은 중국 본토를 향한 전초기지이다. 그러므로 통일된 중국은 절대 코리아를 가만두지 않고, 압록강 이북으로의 진격을 허용하지 않고, 대대로 조공을 받아왔다. 유목세력의 입장에서도 중국본토를 제대로 경영하려면 반도의 코리아세력을 그대로 두어선 안 된다.
해양세력은? 일본의 발흥은 임진왜란때 가시화되었지만, 사실 7세기부터 그들은 제국을 꿈꾸었다. 당중심의 중화세계관을 본따 일본중심의 세계관이 확립되었고, 임나일본부라는 거짓된 기록도 그즈음에 날조된 것이다. 일본의 몸은 섬에 묶여있었지만 생각은 언제나 세계를 향해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은 코리아 반도를 다리로 하여 중국을 점령하고, 나아가 인도의 정벌을 최종목표로 하였다. 그야말로 당대의 관점에서의 '세계정복'이다. 그리고 그 물리력의 바탕은 서양에서 전래된 '총'에 기반하였다. 결국 그들은 20세기 초반에 조선합병에 성공하고 중국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뒤이어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태평양 대제국을 (잠깐) 건설한다. 하지만 또다른 해양세력인 서양세력, 당시의 미국에게 크게 얻어맞고 2차 대전은 끝난다.
이후의 현대사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승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논의, 초강대국인 미-소의 신탁통치 논의, 결렬, 남침, 전쟁, 종전, 민주화, 독재정권의 등장, 민주화. 이러한 역사적 흐름과 영향권의 확대의 뒷배경에는 해양과 대륙이 치열한 다툼이 있어왔다.
3. 역사의 교훈
몇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얻어간다.
첫째, 예견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란 없다.
여기서의 예견은 점쟁이처럼 모년 모월 모일에 전쟁이 터진다는 수준이 아니다. '거대한 세력들의 힘이 움직이는 방향'을 보면 역사의 흐름이 예측된다. 늘 그래왔듯이,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성해진 중국은 코리아를 압박한다. 중국이 약해지면 코리아의 영향권은 북으로 넓어진다.
둘째, 그러므로 정확한 정보와 냉철한 판단이 중요하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하나는, 1942년 미국은 코리아의 독립세력에 대하여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당시 친공산적인 소련내 군사세력, 중국에 있는 친 국민당적 임시정부, 이승만을 위시한 친미세력과 한국내 하급관리로 일하는 코리아인이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섣불리 임시정부를 승인시키면 다른 세력들의 반발이 예상되므로, 신탁통치를 통하여 시간을 벌고, 전후의 행정은 일제하의 관리들에게 맡기는 방향을 염두에 두었다.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미국은 한반도, 대만해협, 베트남, 동남아, 중동, 서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공산주의의 위협에 시달렸다. 설상가상으로 세계대전 이후 군비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국내에서도 비등하였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비도덕적인 공산주의 세력과의 전쟁'이었고, 그 전쟁은 반드시 공산주의 세력이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애치슨 라인은 한반도를 제외한 채로 그어졌고, 소련의 허락과 중국의 동조하에 북한이 전쟁을 시작하였으며, 미국은 대응시나리오에 맞게 자유세력의 연합체인 세계연합(UN)의 이름으로 응전한다. 한국전쟁을 제물로 서방세계는 국내여론을 잠재우고 군비를 다시 확장하였고, 중국의 침략은 대만해협에서 멈췄으며, 동남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은 강하여졌고, 태평양의 보루인 일본은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셋째, 그러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길러내야 한다.
중국인들은 임진왜란 후 조선의 쇠약원인을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국사태만, 즉 국가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문약, 즉 국방력이 없었다. 셋째는 중국의존, 즉 자주적인 판단보다는 언제나 의존적이었다는 의미이다.
무엇보다 올바른 판단력은 정치엘리트에게 필요하다. 엘리트가 국사태만의 자세를 버리고, 국방력을 튼튼히하며, 자주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귀족국가에서는 귀족 중에서, 군사독재에선 군부에서 엘리트가 나왔지만, 민주국가에서는 당연히 시민사회에서 엘리트 즉 지도자가 나온다.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힘이고 이들을 길러내고 뽑아내는 선거제도의 공정성이 중요하다.
넷째, 국민들이 정신차려야 한다. 그리고 리더십의 내용이 중요하다.
코리아 국민들이 위와 같은 세계적인 흐름을 알고 있어야 한다. 지역감정이나 소수자 혐오, 빨갱이 혐오 등에 기대어 사욕만 챙기는 사람을 뽑아줘선 안 된다. 대륙과 해양의 사이에서 며칠, 몇개월, 몇 년사이에 세력균형이 바뀌는 시대에 우리 코리아인은 늘 살아왔다. 너무 피곤한 환경에 있기에 아예 신경 끊고 살고 싶은 것이 현실이지만, 그러는 순간 위기는 찾아온다.
어찌보면 우리 국민들은 세계적인 위협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조상들 중 일부는 스탈린에 의하여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하였고, 일부는 북한에, 일부는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누군가는 사할린에, 누군가는 일본에, 미국에 흩어져있다. 성공을 위하여 간 사람도 있지만 비극적으로 흩어진 가족도 많다. 핵심은 리더십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비추어, 코리아가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코리아가 번영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리더가 나와야 한다.
4. 맺으며
국내적인 사건은 세계적인 사건과 맞닿아 있다. 그 흐름에서 벗어난 돌발사건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당나라의 후방이 안정되면 동쪽의 코리아를 침략하고, 일본의 힘이 강해지면 코리아를 침략하며, 미-소가 화해하면 남-북관계도 좋아지고, 중국이 미국의 힘을 위협하면 미-일-한 삼각동맹이 강해져서 북한이 중-러에 가까워지는 식이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흐름을 읽는 것이다. 둘째는 그 흐름위에 올라 타는 것이다. 셋째는 그 흐름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아무런 준비없이 들어가면 익사한다. 흐름의 방향을 읽고, 흐름에 적응한 다음에 생존과 번영을 도모한다. 일본은 이런면에서 철저하다. 이미 도쿠가와 막부시대부터 유럽과 교류하고,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많은 책들을 일본어로 번역해낸다. 중국은 그 자체가 이미 거대한 세계일뿐더러, 전세계로 유학생들을 보내고 있으며 그들이 다시 중국에 돌아와서 IT기업 붐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이 전세계 모든 지역의 역사/문화를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도 이런 흐름속에서 번영했던 역사가 있다. 신라시대만 하더라도 당, 왜는 물론 동남아와 아랍권과 해상무역을 하였다. 석굴암속 부처님이 왜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겠는가. 고려초기의 벽란도 무역도 마찬가지이다. 세종때는 군사, 문화뿐 아니라 과학의 영역에서도 세계를 주도하였다. 가깝게는 노태우의 공산권 교류 및 제3세계 교류를 시작하여, DJ가 IMF 경제위기를 극복한 힘을 바탕으로 정보통신망 및 문화의 힘을 일으켰다. DJ는 대대로 중국과 해양세력의 패권다툼의 장이었던 인도차이나 지역에 한국경제와 문화 붐을 일으켰고, 버마 문제 및 동티모르 문제의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북한문제의 해결과 6자회담 구상을 실현해냈다. 당시 IMF의 구조조정 요구로 빈부격차는 심하여졌으나, 4대보험의 강화와 전교조 및 공무원노조 합법화로 보완을 위하여 애썼다.
결국 세계의 흐름속에서의 코리아의 힘을 파악하고, 코리아의 역할을 찾아서 국민들을 각성시키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 국민은 위와 같이 세계 경영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으므로, 제대로된 지도자를 만난다면 역량을 꽃피울 수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