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학벌블라인드제에 대한 논의를 보고


처음에는 교육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몇분들의 가르침을 통해, 교육이 왜곡된 것은 결국 시장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장에서의 문제들을 들여다보니 결국은 노동이 문제임을 포착했다.

교육에서 노동까지, 어쩌면 너무 멀리 온 것 같지만,
국공립대네트워크나 학벌블라인드제를 둘러싼 대학생들의 논의를 살짝 지켜보면(짜증나서 길게는 못 봄)
모든게 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동기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전반적인 측면에서 어떠한 장단점이 있을지를 형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갖고 있는 기득권에 어떠한 영향이 올 것인지를 생각한다. 

명문대생에게 지성인의 칭호를 박탈해야 한다.
그들을 지성인이라고 불러선 아니 된다.

교육친화적인 환경에서 자라나고 적당한 머리를 가졌기에,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입학에 성공한, 그런 인간일 뿐이다.

제도 자체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이유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제도가 지금 당장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온오프에서 가끔씩 접하는 의견들을 들으면 깊은 실망감에 빠지는 것이다. 

결국엔 사회의 보상체계가 획일화되어서 발생하는 문제이지만,
그럼 그것을 바꾸는 노력은 누가 해야하는가.
개혁의 전제조건이 성취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전제조건은 누가 언제 어떻게 달성시킬 수 있을까?

2012년 10월 8일 월요일

몸과 구조 Body and Structure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일순간만 보면 멈춰있는 듯 보이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변화의 결을 읽어내고 그 결을 타고 가야 한다.

몸도 변한다. 마냥 그대로는 없다. 살이 찌거나 빠지거나. 몸무게가 그대로라는 것은 그만큼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배출을 한다는 소리이다. 신진대사가 원활하다는 의미이다. 결국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이기 때문에 그대로인 것이다.



살이 찌는 흐름은 타기 쉽다.
많이 먹고, 덜 움직이면 된다.
그러면 몸이 점차로 무거워진다.
몸이 무거워지면 덜 움직이게 된다.
마음이 귀찮아서 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 몸이 힘들기때문에 마음이 귀찮아지는 것이다.

몸에 지방이 쌓이고 근육이 줄어든다.
근육은 지방에 비하여 소모하는 에너지량이 많다.
근육이 줄어들면 몸이 소비하는 에너지량도 더 줄어든다.




살이 빠지는 흐름은, 살이 찌는 흐름과 정반대로 타면 된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많이 움직이면 된다.
몸이 점차로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지면 더 움직이기에 쉬워진다.

마음이 부지런해서 더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때 몸에 힘이 덜 들기 때문에 더 부지런을 떨게 되는 것이다.

지방이 줄어들고 근육량이 늘어난다.
같은 양을 먹어도 몸에서 소비하는 에너지가 더 늘어난다. 살이 덜 찌게 된다.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계획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어떠한 흐름속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서서히 그 흐름을 타면 된다.

흐름을 타야 한다. 

2012년 8월 12일 일요일

진보의 앞길을 잠시 생각해봄- "한국의 진보" 3부작을 보고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2005년도에 방영한 "한국의 진보" 3부작.

한국의 진보 1부. 공장으로 간 지식인들 http://youtu.be/TBtty4-BAdw 
한국의 진보 2부. 인민노련 혁명을 꿈꾸다 http://
한국의 진보 3부. 혁명의 퇴장, 떠난 자와 남은 자http://youtu.be/l5c_pBam_Mw 

이런 기획이 나올 수 있다니 역시 방송의 자유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방송에서는 주로 진보 중에서도 PD계열의 운동사를 짚고 있습니다. 학생운동보다는 노동운동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중간에 주사파 이야기도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주로 인민노련(인천민주주의노동자연맹)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서술되기 때문에, 그들은 주사파 노선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하여 '진보는 알고보니 모두 종북이었나?'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볼만한 영상입니다.
아울러 이 영상을 보면 진보정치운동의 대략적인 흐름은 파악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부는 주로 '학출' 학생출신 노동자들의 '위장 취업'에 대해서 다룹니다.
사실 위장 취업이 아니죠. 실제로 취업을 해서 일을 열심히 하고, 노동운동도 한 것이기 때문에. 단지 신분을 속였을 뿐. 2, 3부는 인민노련의 급부상과 한국노동당, 민주노동당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소개합니다.

정리하면,
1. 대학생들의 문제의식은 80년 광주에서 출발.

2. 군부독재를 타도하기 위해서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노동현장을 주목하기 시작함.

3. 대학생이 노동현장에 취업.

4.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투쟁의 불길이 거세짐.

5. 동구권 몰락과 함께 운동권 사분오열.

6-1. 학출들 중 상당수는 학교로 돌아가거나, 제도정치로 들어감.
6-2. 노동자들은 돌아갈 곳이 없음.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을 못하게 됨.
6-3. 학출들 중 일부는 현장에 머물러 있거나, 노동자정당 건설운동을 계속 하여 민주노동당을 창당함. 노동자 출신 중 극소수는 다른 형태의 시민운동에 참여하게 됨.

7. 노동자정당 건설은 지속적으로 논의되었던 것이었음. 96년 노동법 날치기 사건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은 정당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깨달음.

04년 국회에 입성한  민주노동당 의원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c) 참세상














이 방송은 나름 여러가지 관점에서 그 시대를 재조명합니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그때까지 목소리가 묻혀져왔던 노동자들이, 그 시대와 386들에 대한 평가를 하는 부분이지요. 그들은 떠날 곳이 있었지만, 우리 노동자들은 돌아갈 곳이 없었다고.
또 하나의 그룹은, 김문수/원희룡/신지호와 같은, 이른바 전향자들. 특히 신지호는 아주 귀엽습니다- 대개 뉴라이트들은 nl출신인 경우가 많은데 신지호는 pd출신
다른 하나의 그룹은, 주대환/심상정/노회찬 등의 진보정당건설파.
(등장하지 않은 진보그룹은 주사파 출신의 활동가들)


방송은 3번째 그룹을(주대환 등)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이들의 정치행보는 여전히 진행중이지요. 노회찬/심상정은 통합진보당에 있고, 주대환 씨는 검색해보니 최근 손학규 후보의 대선캠프에 들어갔더군요.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혁명을 하든 운동을 하든 중도계층의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혁명가 본인도 행복하고, 대중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혁명에 대한 기대를 걸고 87년 7.8.9.대투쟁과 그 이후 92년까지의 투쟁이 있었지만, 단시간내에 변화는 없었고 그로 인하여 황폐화된 개인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인상적인 자기고백은: 6월 항쟁 이후에는 더 이상 시민들은 운동권을 좋게만 보지는 않았고, 이상한 말투와 이상한 옷차림의 우리들은 외면받았다는...


중도층이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중도층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나가는 운동방향은 무엇일지,
이상과 이념만이 앞서는 운동이 아닌, 현실의 제반사정을 함께 고려하며 나가는 운동이 무엇일지에 대하여 언제나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학출'선배들과, '인민노련'의 노동자들에 대하여 깊은 존경심을 표합니다.

85년 구로동맹파업. c) 구로동맹파업20주년기엄사업추진위

2012년 7월 9일 월요일

못난이들끼리는 돕고 살아야 한다: 화차 리뷰

-영화 "화차"(변영주 감독, 2012년 작) 스포를 담고 있습니다.



1. 노래


YB의 "나는 나비"의 가사 일부분.


"추운 겨울이 다가와 힘겨울지도 몰라
봄바람이 불어오면 이제 나의 꿈을 찾아 날아
날개를 활짝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영화 국가대표의 OST였던 "버터플라이"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수 있게 날아 저 멀리"




2. 무한도전: "타인의 삶" 특집


이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것 같다.

평범한 남자아이라면 한 번쯤 꿈꿔볼 법한,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
무한도전의 타인의 삶 기획은, "하루 쯤은 자기가 정말 바랬던 삶으로 살아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근원적인 욕망을 담아낸 기획으로 봤다.

의사로 된 박명수가 스트레스 받는 모습보다는,
천진난만한 정준하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실 정말 박명수가 의사가 되고싶었는지는 의심스러웠지만, 정준하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3. "화차"에서 느낀점



누구라면 꿈꿀법한 삶.
적당히 넓은 크기의 집에, 사랑하는 남녀, 안정된 직장, 외모도 둘 다 준수하다.

하지만 여자의 과거 중 대부분은 남자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차있다.

어떤 부모를 만날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없다. 아버지가 사채를 썼다. 아버지는 잠적하고, 어머니는 그들에게 살해당했다. 사채로 인해 남편 집이 박살이 나고, 이혼당했다. 그리고 자기는 사창가로 팔려간다.

이 모든 과정은 비극적이지만 현실에서 있을법하다.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다.
이 영화의 무서운 점은, 그 과정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는 부분에 있다.
사실 대부분의 과정들에서 그녀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도 그녀의 운명을 도울만큼 바꿔주지는 못한다.

주인공 남자 역시 일반적인 영화와는 달리, 그녀를 구원해주지 못한다.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다'는 대답을 듣고 난 이후에는 매몰차게 버릴 뿐이다. 매몰차다기 보다는 찌질함 그래서 오히려 평범한 모습에 가깝다.

그녀가 단지 그녀라는 이유만으로 도와줬던 사람은 수녀원 언니 뿐이었다.




4.
불편한 진실이지만, 누군가는 나비가 될 기회조차도 가져보지 못하고 애벌레상태에서 짓밟혀버리고야 만다.
달리기로치자면, 출발선에 서볼 기회조차 가지 못하고 삶이 박살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완전한 조건에서 출발한다. 혹은 출발선에 서더라도 '완전히 공정한 조건'같은 것은 애당초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사회에서 더더욱 "스포츠" 광고에 매달리고, 그 중에서도 '인간승리'의 사례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완벽하게 부모를 잘 만나는 것 (상대적으로 가장 훌륭한 부모를 만나는 것) 그들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는 것이 지금까지 인간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을 좌지우지해왔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인간을 외피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 보고 아껴주고 사랑하는 길 뿐이다.





5.
인간사회가 이러한 모습이라면, 동물의 왕국과 다를바가 무엇일까?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를 일거에 바꾸는 방법은 있을까?
세상에 한꺼번에 무언가가 바뀌는 것은 없다.
혁명은, 총체적 모순상황에 대한 변혁에 대한 은유라고 받아들여도 좋다.
무력혁명은 그 결과의 선명성 때문에 정말 많은 것이 바뀌는 것 같지만, 실제로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그 구체적인 방법론이 무엇이 되었든,
지금 굴러가는 이 사회는 무언가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고자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나의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죽어감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태일이 말했던, '너는 또다른 나'라는 말은 사실상 앞서 말한 정신과 같은 내용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도 같은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인 비유에 따르면, 나는 병든자/아픈자의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 
전태일은 결코 본인이 배가 고파서 죽은 것이 아니라, 본인은 먹고살만한 지위에 있음에도 평화시장에서 죽어가는 그녀들을 생각했다.

단순히 한 명의 위대한 결단으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단지 종교적 숭배에 그칠 뿐이다.
그보다는, 정말로 현실이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누군가의 전태일이, 사마리아인이 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그 무관심 속에 죽고야 말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보고 살 것인지, 외면하고 살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의 영역 즉 매트릭스에서 파란약을 먹느냐 빨간약을 먹느냐의 차이이다. 어떤 알약을 먹고 살지에 대한 선택은 사실 아주 쉬운 일인것처럼 어떤 관점으로 사느냐도 어떤 면에서는 본인이 쉽게 선택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파란약(현실외면)이냐 빨간약(현실직시)이냐.


"착한 사마리아인" - 페르디낭 호들러 (1884)


2012년 6월 27일 수요일

기록: 활동가 정체성을 가진 법률가에 대한 짧은 생각 (2012년 인권법학회 세미나 후기)

오랜만에 세미나하니 재미졌음..이번학기 컨셉답게 치열한 토론..
현장과, 사무실과, 법정사이의 균형/ 그리고 사회이론과 실천과 규범을 통한 변혁 사이에서의 균형.

못다한 얘기들...
활동가 정체성을 가진 법률가? 아니면 활동가? 그도 아니면 그냥 법률가? 여러가지 고민들이 많겠지만, 비싼돈 들여서 로스쿨에 온 이상, 분명히 법률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전문영역이 있듯이, 법률가도 마찬가지라는 점. 

물론 법률가가 하는 일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변혁의 주체가 아니라, 이질서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일만 반복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변혁을 생각하는 법률가라면, 단순히 '법률 구조legal aid'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그 문제가 되풀이 되는 원인과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는 것 까지 고민할 '책무'가 있는 것입니다. 


헌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헌법은 활자로된 닫혀있는 규범이 아니라 해석가능성이 열려있는 규범입니다. 헌법 조문, 현재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태도, 그리고 교과서에 쓰여져있는 내용을 일단 잘 알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이 어떻게 더 넓게 혹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헌법의 틀 내에서의 사고'란, 지금까지 나온 헌법학의 논의안에서만 사고하라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정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것을 역동적으로 살려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운동의 언어를 어떻게 헌법의 언어 안으로 녹여내서,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할지를 고민해봐야하는 것입니다. 

제도 안에서 활용되는 도구와 개념들을 다루는데 익숙해져야 하고, 그와 동시에 제도의 한계와 제도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운동을 지향하면서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그래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중앙에서의 논의를 모두 알고 여기에 참여하고 중앙싸움을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또 제도밖의 더 나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힘도 있어야 합니다. 중앙싸움에서

도 승리하면서 그 이상도 보아야 합니다.


=====
2012년 세미나 직후에 내가 썼던 글인데, 다시 내가 읽어 보고 감동받았다. 아 정말 난 감동적이다..


아울러 호모레지스탕스 서문 (박경신)


"이 책의 주인공은 사회적 소수이자 약자들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들이 부당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바로 서고자 분투하는 저항기를 담았다. 땀내 절은 그들의 삶은 고단한 만큼 고상하다. 성실한 노동자로서 밥벌이를 놓지 않으려 분투하는, 박탈당한 시민적 기본권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 정치적 인간으로 바로 서고자 분투하는 그들의 삶이 고상하다 말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두고 높고 낮음을 말해야 하는가...(중략)...팍팍해서 만만한 세상살이가 경외로워지는 시점은, 약동하는 생명에게서 경외를 느끼게 되는 시점은 불편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떠맡을 때라는 것을."


===

사실 호모레지스탕스 책에 담긴 사상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알리고 싶을 때가 많은데,
대부분 학생이 책을 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때문에 그 민망한 감정이 앞서서 그 이상의 이야기는 못하게 된다.
주로 내가 책의 저자로 참여한 것은 나의 능력과 무관하다는 시답잖은 얘기만 하고 끝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면 사람들은 추가질문을 하는 등으로 더 이상 귀찮게 하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주변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질문을 잘 던지는 편이었다. 지금은 안 그러지만..)

그런데, 호모레지스탕스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은 결국, 팍팍하고 힘든 우리들의 삶 속에서 올바르고 상식적인 것을 찾아서 싸우는 사람들의 승리의 기록들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사실 그 승리는 제도적인 변화로 나아가기도 한다. 

거대담론(?)에서 보자면 별다른 변화가 아니라고 할 수 있고, 법이 무기력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의 삶에 있어서 스스로 가치있다고 여기는 일은,
내가 단 한명의 삶이라도 나의 도움으로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내가 신이 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아픔과 슬픔을 나누어질 수 있다는 사실, 나에게 나눌 수 있는 무언가가 있고 그것이 실제로 나누어져서 우리가 서로 친구가 될 때, 가장 큰 삶의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들이 퍼져나간다면 세상은 바뀔꺼라고 믿는다.

기록: 2012년 5월 24일 영등포 성문밖 교회 방문

작년에 학회지에 "도로위의 노동자들" 이라는 주제로 글을 투고 했었습니다. 


민주노총 퀵서비스노조와, 대구지역 대리운전노조, 그리고 비정규직차별철폐연대의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지난 4월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에 최초로 전국대리운동조합이 창설되고, 초대 위원장으로 대구노조에서 자료를 보내주셨던 박원철 씨가 위원장이 되셨다고합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대리운전노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공익과 인권을 전달해드리고 왔습니다. 사진은, 오늘 제가 방문했었던 성문밖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기독교 사적 제8호로 지정한 유서깊은 교회더군요. 

비석의 글귀는, 기독교인이라면 한번 쯤 읽어볼만합니다.


(노동선교라는 개념이 존재하는지 처음 알았던 날)


결산: 한학기 혹은 지난 2년 반


결산.
이번 학기에는 몇 가지 기억들이 있다.



하나는, 인권법학회 세미나를 마치고 장터에서 막걸리를 마셨을 때.
그때, 학생으로서 축제와 잠깐의 여유를 찾는 것이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점이 다가왔다.
이제 막 학회에 들어온 4기들과, 2학년이 되어 이제는 로스쿨생같아진 3기생들사이에서,
1년만에 갑자기 나이가 많은 축이 되어버린 나의 위치를 찾는 것도 약간은 어색하고 졸업반이 되었다는 사실이 생소했다.


두번째는, 이윤정 씨의 죽음.
사람의 죽음을 내가 막을 수는 없지만, 못내 여러가지 면에서 아쉬웠다.
1) 작년 11월쯤에 산소통 멤버들과 윤정씨를 병문안 가자는 말이 있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가지 못햇는데, 그때 다같이 갔었어야 했다.
2) 소송이 진행중인 원고였는데 재판기일에 제대로 심리가 이뤄진 적이 없다. 클리닉에 정신적인 여유가 있었더라면 소송에 있어서 보다 주도적으로 변론속개를 요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삼성 산재사건의 변론을 맡고 계시는 김칠준 변호사님)


세번째는 아마도 지속적인 기억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지만,
산소통 클리닉의 중흥기(?)를 맞이하였고 여기서 좋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부분이다.



우선은, 반올림 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우발적이었다.
2-30대의 무수한 죽음들을 목도할 수 없었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수습을 지원한 것이었다.

다만 그곳에 가서 보니, 지금까지 지켜봤던 다른 단체들과는 달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학생들을 조직하여 관련사업을 진행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여러가지 사정들을 거치면서 학교내 공식기구처럼 되었지만.

이 일을 하기 이전에도 좌파적인 마인드가 있었고 또한 나 스스로도 좌파라고 규정짓지만, 좌파이론의 공부를 심도있게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좌파적인 관점에서만 이 문제를 바라보지는 않고 있다. 그것을 어제 MT때 이야기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을 막는 것과 앞으로 유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물론 과거에는 양모산업이 이랬을 것이고, 중공업이, 자동차가, 중화학이 그랬고, 현재는 전자산업이 이런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첨단산업에서의 노동자들이 조직되지 못하여 발생하는 문제들, 혹은 그 이상의 근본적인 원인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거시적인 관점을 떠나서,
나는 지금 당장 그 힘든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의 삶에서 의미있는 부분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다행인 것은 별 생각없이 시작했던 일들이 꼬리를 물면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로 인하여 여기에 참여하는 학우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불과 1년만의 일이다. 그만큼 이 문제가 곪을대로 곪은 문제라는 것이겠지.
참 지금은 홀가분하고 기쁘다. 학회장이 끝났을때만큼 홀가분한 기분.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 광야





결국 2년 반의 삶을 돌아보면,
첫 1년은 거의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고, 2008-2010년 인생 최악의 시기의 마지막을 겪으며 바닥 중에서도 바닥을 쳤던 시기,
그 다음 1년은 학회장으로서의 한학기와 산소통 사업을 세우는 과정으로의 한 학기,
그 다음 한학기 역시 정민과 함께 산소통의 자리를 잡아가는 한 학기였구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순간순간의 결단이 나중에 보면 크게 삶을 바꿔놓는다.
그 순간순간의 결단은 결국 평소에 길러졌던 생각이나 감수성에서 기초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냐보다는, 자기가 했던 그 순간의 선택들을 믿고, 굳건히 자기의 길을 가면 되는 것이라는 말을, 재원에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 순간에 그러한 선택을 한 것도 정말 대단한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