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남의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나의 뜻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권유가 컸다. 


어찌보면, 학부법대를 선택하게 된 것에도 그리 깊은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외무고시를 볼까 했었는데 그러려면 법대가 좋다는 아버지의 권유에. 
여기에도 아버지의 권유.


솔직히 말하면 법대오기전에는 판사랑 검사도 제대로 구분못했고,
서울대 로스쿨에 오기 전까지는 로펌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6대로펌은 당연히 모르고) 변호사가 뭔지도 몰랐다. 

사법시험이 뭔지도 몰랐고..



그렇지만, 직업으로서의 변호사가 매력적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몇 번 있었다.


1.
최초의 계기는, 법무법인 태평양 설립자인 "김인섭"변호사의 신입생 특강때였던 것 같다.
의사나 법조인은, 국가의 기초적인 기능수행을 돕는 '준'공무원의 신분이므로, 국가가 자격관리를 하는 것이고, 같은 이유로 영리를 추구보다는 국가전체를 봐야 하는 직업이라고.
공무원도 아닌데 공적이라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2. 
두 번째 계기는, 역시나 영화 "필라델피아"
톰행크스보단 덴젤워싱턴이 훨 매력적이었다.
되는거 안되는거 뭐든지 소송하는 변호사. 
이 영화는 최소한 네 번은 봤는데
첫번째 두번째 봤을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봤고
세번째 봤을때부터는, 아, 형식적으로는 능력부족을 해고사유로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에이즈를 사유로 한 해고라고 본다면, 그것은 정당한 이유없는 차별이 되어서 부당해고구나..라는 것을 생각했다.

매력적이지않은가? 헌법이라니. 그 헌법이 해고를 부당한 것으로 규정짓다니.


3.
세 번째 계기는, 사시를 접은 08년 말부터, 고려대 국제공익법률상담소에서 박경신 교수님과 함께 일했던 시기였다. 
사시공부할때만 해도, '변호사는 걍 돈버는 애들, 검사는 권력에 빌붙는 놈들, 판사는 내 적성이 아니야!' 정도로 생각이 얕았는데... 참 얕았다..

변호사가, 그냥 돈만 버는 사람들이 아니라, 헌법속에서 움직이며 때론 헌법도 넓혀가며, 때로는 돈도 벌며, 때론 집회도 나가고 일인 시위도 하고,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고, 배웠다.

집회나가서 짱돌 드는 사람이 있는거고,
법정에 나가서 두뇌와 혓바닥과 펜대로 싸우는 사람이 있는거지.

아 그렇구나. 


4.
이 길에 들어선 것이 후회스러웠다. 지금도 크게 자랑스럽거나 만족스럽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남의 중요한 일을 맡아서, 승리를 담보해주어야 하는 것은 엄청난 심적 부담을 안겨준다. 

법조직역은, 의사도 마찬가지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대로 중인들이 해왔다. 판사 말고. 법조직역.

적성에 그닥 맞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의 미약한 지능과 이해력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보람을 준다. 정말로 나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데, 좋은 부모를 만나 적당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남을 돕는 사람이 될 수 있다니?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신기하고 놀랍고, 두려울 따름이다.



5.
결정적으로 법조인이 되어야겠다는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이 세상의 많은 부조리들, 사실 정말 별것도 아닌, 전문가의 도움이 있다면 쉽게 해결 될 수 있는 일들로부터 비롯됨을 보았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사람들에겐 정말 불편하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원스탑으로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나처럼 머리가 좀 떨어져도,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하면, 그런 더러운 꼴을 갈아 엎을 수 있는 직업이, 법조인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왔기에, 크게 출세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도 없고, 판검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미약한 능력을 쓸 수 있는 곳에 열심히 쓰는 것만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자고.



윤여준의 "대통령의 자격"도 같이 샀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주로 폭식을 하는데,
아주 가끔씩은, 책을 폭풍구매하고 읽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 때도 있다. 정말 아주 가끔.
7.
오늘 다시 한 번 머리가 띵해졌다.
공부스트레스로, 서점에 가서 책을 보았는데, "그남자 문재인"
변호사 문재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문변에게 어떤 누가 와도,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음'을 기억한다. 공통적으로.

나처럼 멍청해서 얘기를 듣고 또듣고 이해못해서 또듣고 하는게 아니라.. -_-...
사실 변호사들은 그런 말을 종종 한다. '악성 민원인'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변호사 사무실마다 돌아다니면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 
해고 노동자. 돈 없는 사람. 수감자. 그런 사람들 얼마나 하고 싶은 말들이 많고 억울할까.

그러나 전문가가 되면, 말을 잘 끊고, 듣고 싶은 말, 필요한 말만 요구한다. 그게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 그 사람들에겐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이러한 마음가짐은, 내가 법조인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 계기와도 맞닿아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마음가짐.



8.
다시 초심을 찾는다.
어떤것도 바라지 않고 이 길에 들어섰다. 
나의 마음은, 오아시스 없는 황무지와도 같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그리고 법조인이 된 후의 하루 하루를 보람되게 살아가고자한다.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초심이었고, 또 마지막 마음이 되길 바란다.

다이어리에 쓴 2012년 목표가 '남의 말을 끊지 말자'였다
.
친구들 말도 이렇게 잘 끊는데, 앞으로 의뢰인 말은 얼마나 잘 끊게 될까. 
그러지 말자. 
누구의 말이든 잘 들어주자.







2012년 11월 16일 금요일

전진

삶은 부조리하고 불공평하고 냉혹하다.
내 안에 있는 허무함과 슬픔, 두려움과 공허함을 이겨내는 방법을 이미 찾았다.
그것은 내가 갖고 있는 미약한 능력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사는 것일 뿐이다.
나의 허무함과 슬픔은, 나 스스로는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떠한 권위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권위에 안기면 나는 그 속에서 편안하지만, 동시에 부자유스럽다.

그렇기에 나는 나처럼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쓰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과 공명共鳴할 때, 그들이 나에게 공명해줄 때 더할 수 없는 안식을 받는다.
어딘가에서 오는 명령이 아니라 우리들만의 공명.
부조리한 세상속에서 위계를 찾아내는 권위가 아니라, 부조리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자체로 사랑해주는 공명.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오늘도 전진.

2012년 11월 10일 토요일

불완전과 공감

<기록>

나는 쇠락해가는 것들에 공감을 느끼고 마음아파한다.
가장 약한고리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고 그들의 일을 나의 일로 생각해보려고 애썼다.
그것에는 이성적이고 종교적인 이유가 있지만, 나라는 인간의 인격의 형성이 그러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토대는 여러가지 유년시절들의 기억과 경험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박애정신, 그리고 얕은 독서들로 채워진 것 같다.

나는 감정의 표현에 비교적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권위에 의존적이고, 특히 권위있는 타인의 관심과 애정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성장의 과정중에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뼈저리게 경험해보고, 권위있는 누군가가 나의 삶을 행복하고 즐겁게 해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수험생활을 겪으며, 나의 인격 중 약하고 어두운 면이 유독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이 현재 자기 연민에 빠져있음을 깨닫고, 스스로의 굴속으로만 파고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마음아픈 것들에 대해서, 그때그때 주변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해결책을 찾고, 무언가를 하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것이 내가 그들을 위로하는 방법이고, 그것은 그들이나 세상이 나를 알아주는 것을 바라는 의도는 아니다. 우리중에 약한 자도 어차피 나이기 때문이고 내가 바로 그 약한자이기 때문이다.

시험이 얼마남지않았다.
그렇기에 이런 감수성들을 억누르고, 차가운 마음으로 살아가야하기에, 사람들을 더욱 멀리하게되고 더욱 부정적인 쪽으로 마음이 강화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제정신이 아니고, 마음상태도 이래저리 온전하지 않다.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학벌블라인드제에 대한 논의를 보고


처음에는 교육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몇분들의 가르침을 통해, 교육이 왜곡된 것은 결국 시장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장에서의 문제들을 들여다보니 결국은 노동이 문제임을 포착했다.

교육에서 노동까지, 어쩌면 너무 멀리 온 것 같지만,
국공립대네트워크나 학벌블라인드제를 둘러싼 대학생들의 논의를 살짝 지켜보면(짜증나서 길게는 못 봄)
모든게 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동기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전반적인 측면에서 어떠한 장단점이 있을지를 형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갖고 있는 기득권에 어떠한 영향이 올 것인지를 생각한다. 

명문대생에게 지성인의 칭호를 박탈해야 한다.
그들을 지성인이라고 불러선 아니 된다.

교육친화적인 환경에서 자라나고 적당한 머리를 가졌기에,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입학에 성공한, 그런 인간일 뿐이다.

제도 자체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이유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제도가 지금 당장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온오프에서 가끔씩 접하는 의견들을 들으면 깊은 실망감에 빠지는 것이다. 

결국엔 사회의 보상체계가 획일화되어서 발생하는 문제이지만,
그럼 그것을 바꾸는 노력은 누가 해야하는가.
개혁의 전제조건이 성취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전제조건은 누가 언제 어떻게 달성시킬 수 있을까?

2012년 10월 8일 월요일

몸과 구조 Body and Structure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일순간만 보면 멈춰있는 듯 보이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변화의 결을 읽어내고 그 결을 타고 가야 한다.

몸도 변한다. 마냥 그대로는 없다. 살이 찌거나 빠지거나. 몸무게가 그대로라는 것은 그만큼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배출을 한다는 소리이다. 신진대사가 원활하다는 의미이다. 결국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이기 때문에 그대로인 것이다.



살이 찌는 흐름은 타기 쉽다.
많이 먹고, 덜 움직이면 된다.
그러면 몸이 점차로 무거워진다.
몸이 무거워지면 덜 움직이게 된다.
마음이 귀찮아서 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 몸이 힘들기때문에 마음이 귀찮아지는 것이다.

몸에 지방이 쌓이고 근육이 줄어든다.
근육은 지방에 비하여 소모하는 에너지량이 많다.
근육이 줄어들면 몸이 소비하는 에너지량도 더 줄어든다.




살이 빠지는 흐름은, 살이 찌는 흐름과 정반대로 타면 된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많이 움직이면 된다.
몸이 점차로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지면 더 움직이기에 쉬워진다.

마음이 부지런해서 더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때 몸에 힘이 덜 들기 때문에 더 부지런을 떨게 되는 것이다.

지방이 줄어들고 근육량이 늘어난다.
같은 양을 먹어도 몸에서 소비하는 에너지가 더 늘어난다. 살이 덜 찌게 된다.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계획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어떠한 흐름속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서서히 그 흐름을 타면 된다.

흐름을 타야 한다. 

2012년 8월 12일 일요일

진보의 앞길을 잠시 생각해봄- "한국의 진보" 3부작을 보고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2005년도에 방영한 "한국의 진보" 3부작.

한국의 진보 1부. 공장으로 간 지식인들 http://youtu.be/TBtty4-BAdw 
한국의 진보 2부. 인민노련 혁명을 꿈꾸다 http://
한국의 진보 3부. 혁명의 퇴장, 떠난 자와 남은 자http://youtu.be/l5c_pBam_Mw 

이런 기획이 나올 수 있다니 역시 방송의 자유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방송에서는 주로 진보 중에서도 PD계열의 운동사를 짚고 있습니다. 학생운동보다는 노동운동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중간에 주사파 이야기도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주로 인민노련(인천민주주의노동자연맹)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서술되기 때문에, 그들은 주사파 노선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하여 '진보는 알고보니 모두 종북이었나?'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볼만한 영상입니다.
아울러 이 영상을 보면 진보정치운동의 대략적인 흐름은 파악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부는 주로 '학출' 학생출신 노동자들의 '위장 취업'에 대해서 다룹니다.
사실 위장 취업이 아니죠. 실제로 취업을 해서 일을 열심히 하고, 노동운동도 한 것이기 때문에. 단지 신분을 속였을 뿐. 2, 3부는 인민노련의 급부상과 한국노동당, 민주노동당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소개합니다.

정리하면,
1. 대학생들의 문제의식은 80년 광주에서 출발.

2. 군부독재를 타도하기 위해서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노동현장을 주목하기 시작함.

3. 대학생이 노동현장에 취업.

4.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투쟁의 불길이 거세짐.

5. 동구권 몰락과 함께 운동권 사분오열.

6-1. 학출들 중 상당수는 학교로 돌아가거나, 제도정치로 들어감.
6-2. 노동자들은 돌아갈 곳이 없음.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을 못하게 됨.
6-3. 학출들 중 일부는 현장에 머물러 있거나, 노동자정당 건설운동을 계속 하여 민주노동당을 창당함. 노동자 출신 중 극소수는 다른 형태의 시민운동에 참여하게 됨.

7. 노동자정당 건설은 지속적으로 논의되었던 것이었음. 96년 노동법 날치기 사건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은 정당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깨달음.

04년 국회에 입성한  민주노동당 의원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c) 참세상














이 방송은 나름 여러가지 관점에서 그 시대를 재조명합니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그때까지 목소리가 묻혀져왔던 노동자들이, 그 시대와 386들에 대한 평가를 하는 부분이지요. 그들은 떠날 곳이 있었지만, 우리 노동자들은 돌아갈 곳이 없었다고.
또 하나의 그룹은, 김문수/원희룡/신지호와 같은, 이른바 전향자들. 특히 신지호는 아주 귀엽습니다- 대개 뉴라이트들은 nl출신인 경우가 많은데 신지호는 pd출신
다른 하나의 그룹은, 주대환/심상정/노회찬 등의 진보정당건설파.
(등장하지 않은 진보그룹은 주사파 출신의 활동가들)


방송은 3번째 그룹을(주대환 등)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이들의 정치행보는 여전히 진행중이지요. 노회찬/심상정은 통합진보당에 있고, 주대환 씨는 검색해보니 최근 손학규 후보의 대선캠프에 들어갔더군요.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혁명을 하든 운동을 하든 중도계층의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혁명가 본인도 행복하고, 대중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혁명에 대한 기대를 걸고 87년 7.8.9.대투쟁과 그 이후 92년까지의 투쟁이 있었지만, 단시간내에 변화는 없었고 그로 인하여 황폐화된 개인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인상적인 자기고백은: 6월 항쟁 이후에는 더 이상 시민들은 운동권을 좋게만 보지는 않았고, 이상한 말투와 이상한 옷차림의 우리들은 외면받았다는...


중도층이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중도층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나가는 운동방향은 무엇일지,
이상과 이념만이 앞서는 운동이 아닌, 현실의 제반사정을 함께 고려하며 나가는 운동이 무엇일지에 대하여 언제나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학출'선배들과, '인민노련'의 노동자들에 대하여 깊은 존경심을 표합니다.

85년 구로동맹파업. c) 구로동맹파업20주년기엄사업추진위

2012년 7월 9일 월요일

못난이들끼리는 돕고 살아야 한다: 화차 리뷰

-영화 "화차"(변영주 감독, 2012년 작) 스포를 담고 있습니다.



1. 노래


YB의 "나는 나비"의 가사 일부분.


"추운 겨울이 다가와 힘겨울지도 몰라
봄바람이 불어오면 이제 나의 꿈을 찾아 날아
날개를 활짝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영화 국가대표의 OST였던 "버터플라이"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수 있게 날아 저 멀리"




2. 무한도전: "타인의 삶" 특집


이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것 같다.

평범한 남자아이라면 한 번쯤 꿈꿔볼 법한,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
무한도전의 타인의 삶 기획은, "하루 쯤은 자기가 정말 바랬던 삶으로 살아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근원적인 욕망을 담아낸 기획으로 봤다.

의사로 된 박명수가 스트레스 받는 모습보다는,
천진난만한 정준하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실 정말 박명수가 의사가 되고싶었는지는 의심스러웠지만, 정준하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3. "화차"에서 느낀점



누구라면 꿈꿀법한 삶.
적당히 넓은 크기의 집에, 사랑하는 남녀, 안정된 직장, 외모도 둘 다 준수하다.

하지만 여자의 과거 중 대부분은 남자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차있다.

어떤 부모를 만날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없다. 아버지가 사채를 썼다. 아버지는 잠적하고, 어머니는 그들에게 살해당했다. 사채로 인해 남편 집이 박살이 나고, 이혼당했다. 그리고 자기는 사창가로 팔려간다.

이 모든 과정은 비극적이지만 현실에서 있을법하다.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다.
이 영화의 무서운 점은, 그 과정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는 부분에 있다.
사실 대부분의 과정들에서 그녀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도 그녀의 운명을 도울만큼 바꿔주지는 못한다.

주인공 남자 역시 일반적인 영화와는 달리, 그녀를 구원해주지 못한다.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다'는 대답을 듣고 난 이후에는 매몰차게 버릴 뿐이다. 매몰차다기 보다는 찌질함 그래서 오히려 평범한 모습에 가깝다.

그녀가 단지 그녀라는 이유만으로 도와줬던 사람은 수녀원 언니 뿐이었다.




4.
불편한 진실이지만, 누군가는 나비가 될 기회조차도 가져보지 못하고 애벌레상태에서 짓밟혀버리고야 만다.
달리기로치자면, 출발선에 서볼 기회조차 가지 못하고 삶이 박살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완전한 조건에서 출발한다. 혹은 출발선에 서더라도 '완전히 공정한 조건'같은 것은 애당초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사회에서 더더욱 "스포츠" 광고에 매달리고, 그 중에서도 '인간승리'의 사례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완벽하게 부모를 잘 만나는 것 (상대적으로 가장 훌륭한 부모를 만나는 것) 그들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는 것이 지금까지 인간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을 좌지우지해왔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인간을 외피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 보고 아껴주고 사랑하는 길 뿐이다.





5.
인간사회가 이러한 모습이라면, 동물의 왕국과 다를바가 무엇일까?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를 일거에 바꾸는 방법은 있을까?
세상에 한꺼번에 무언가가 바뀌는 것은 없다.
혁명은, 총체적 모순상황에 대한 변혁에 대한 은유라고 받아들여도 좋다.
무력혁명은 그 결과의 선명성 때문에 정말 많은 것이 바뀌는 것 같지만, 실제로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그 구체적인 방법론이 무엇이 되었든,
지금 굴러가는 이 사회는 무언가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고자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나의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죽어감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태일이 말했던, '너는 또다른 나'라는 말은 사실상 앞서 말한 정신과 같은 내용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도 같은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인 비유에 따르면, 나는 병든자/아픈자의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 
전태일은 결코 본인이 배가 고파서 죽은 것이 아니라, 본인은 먹고살만한 지위에 있음에도 평화시장에서 죽어가는 그녀들을 생각했다.

단순히 한 명의 위대한 결단으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단지 종교적 숭배에 그칠 뿐이다.
그보다는, 정말로 현실이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누군가의 전태일이, 사마리아인이 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그 무관심 속에 죽고야 말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보고 살 것인지, 외면하고 살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의 영역 즉 매트릭스에서 파란약을 먹느냐 빨간약을 먹느냐의 차이이다. 어떤 알약을 먹고 살지에 대한 선택은 사실 아주 쉬운 일인것처럼 어떤 관점으로 사느냐도 어떤 면에서는 본인이 쉽게 선택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파란약(현실외면)이냐 빨간약(현실직시)이냐.


"착한 사마리아인" - 페르디낭 호들러 (1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