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6일 목요일
또 하나의 가족과, 제가 아는 가족들의 이야기
"시민동지여러분! 이 자리를 지킵시다!"
영화 '변호인'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로 기억합니다. '변호인'을 보고도 할 말이 많았습니다. '변호인'은 그 시대를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우리 선배세대의 이야기를 하며, 마지막엔 송우석 변호사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였음을 보여줍니다.
2014. 2. 6. 오늘, 드디어 '또 하나의 약속'이 정식 개봉했습니다!
'변호인'이 우리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자 시대의 성장과정을 담은 이야기라면, '또 하나의 약속'은 우리의 현재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앞으로 우리시대가 어떻게 성장해갈 것인지를 예언하는 영화입니다. 글의 서두를 굳이 '변호인'으로 시작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두 이야기는 각각 한 시대가 '잃어버린' 혹은 '외면하고싶은' 어떤 사실들을 노래합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가 '가장 약한자들' '가장 순수한자들'을 희생시켜왔다는 사실이며, 한편으로는 힘을 가진자가 항의하는 목소리들을 억눌러왔다는 사실이며,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는 뭉치고 뭉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로스쿨 2학년에 재학중이던 2011년 7월 여름실무수습과정을 통하여 이 문제를 직접 접하게 되었습니다. 언론을 통하여 보아왔던 사실들과, 직접 겪었던 3주간의 수습과 현재 직접 보고 듣는 이야기들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이것이 정말 21세기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대하여도 되는 것인가, 충격적이었습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제가 겪은 사실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분명히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지금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계속하여 피해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에 때로는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복잡했습니다. 쟁점도 복잡하였습니다. 정의는 혼란스러웠고, 싸움의 역사는 길었고, 등장인물도 많았으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어디까지 이야기하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여러차례 이 문제를 글로 정리하려고 하였으나, 지금까지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은 그 까닭입니다.
다행히, 이번에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하였습니다.
홍리경 감독과 류승진 님, 그리고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공들인 영화 '탐욕의 제국'도 제작되었습니다.
정말 알기 쉽게 사건을 소개한 만화, 김수박 작가와 김성희 작가의 '사람냄새'와 '먼지없는 방'도 출간되었습니다.
희정작가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밀착취재한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책도 나왔습니다.
박일환 님이 쓴 '삼성반도체와 백혈병'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저보다 알기 쉽게 설명한 매체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제가 만화를 좋아해서그런지, 전 만화책을 강추합니다.ㅎㅎ
여하튼 영화를 본 김에, 제가 겪었던 일들과, 저의 감상을 정리..하고자 했지만, 오늘은 본
론을 쓰기에 앞서 자잘한 사실들을 먼저 정리하고자 합니다(글을 길게쓸 엄두가 안 남)
- 아버님은 사투리 억양이 강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약간은 생소한 단어를 자주 쓰시진 않습니다.
- 아버님은 영화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밝은 분이십니다. 아버님이 우시는 장면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나와서 생소했습니다.
-속초집 내부와 외관은 정말 비슷한 것 같습니다.
- '노무사'님은 충청도 말투에 가깝습니다. 훠얼씬 말이 느립니다. 중요한 얘기할때는 빨라집니다.
-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반올림에는 노동자 건강권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활동해온 푸근하면서도 까칠한 형 누나들이 정말 많이 계셨고, 그분들은 저를 정말 많이 갈구고 놀렸지만, 대체적으로 친절하게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셨습니다(ㅋ).
- '사무실'은 영화보다 훨~씬 좁았습니다. 경기도 민주노총본부 한쪽 귀퉁이방에서, 다른 노무사 한 분과 겸방을 했고, 옆방에는 회의실로 쓰이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 전반적으로, 영화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처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다소 정보량이 많을 수 있겠다는 느낌. 그리고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100의 긴장감을 갖고 보게해서,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까 진이 빠지더군요.
- 영화에 나오는 환경컨설팅 회사는 'Environ(인바이런)'이라는 회사로, 공단의 1심 일부패소 이후 삼성공장이 유해하지 않다는 자체조사결과 발표 이후에 항소심에서도 그 발표자료가 증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중간에 농성장면이 살짝 나오는데, 1심 일부승소 판결 이후 항소포기를 위해서 근로복지공단 점거농성을 한 것입니다(2011. 7.경). 인테리어나 조명 등이 정말 소름끼치게 비슷해서 깜짝놀랐습니다.
- 고 황유미 씨의 사수(맞선배)였다는 '숙x'언니라는 분도 결국 돌아가셨고, 황유미 씨와 함께 1심 승소했습니다.
- 고 박지연 씨의 모델인, 초반에 잠깐 등장하였다가 사망한 여성분은, 87년 생이었고, 생존자 중 최초로 반올림 제보자였으며, 박 씨의 제보 이후 영화속에 등장한 생존자 남성(송창호 님)과 여성(김옥이 님)이 원고로 합류하게 됩니다. 박지연 씨는 2011년 4월달에 사망하였고, 영화에 소개된 바와 같이 사망전후의 여러가지 사정상 거액의 합의금을 받고 소를 취하합니다.
- 황상기 님 외의 원고들, 특히 여성 원고 2분에 대한 묘사는, 음, 영화보면서 정말 깜짝놀랐습니다. 느낌이 너무 비슷해서. 당사자들은 아마 더 놀라지않을까 싶습니다.
- 황상기 님을 비롯한 당사자들은, 영화속에서의 모습보다 더, 당당하고, 씩씩하고, 웃음많은 분들입니다(^^...)
- 영화의 또다른 한 축으로 보이는, 이경영 씨를 비롯한 엔지니어 팀의 이야기 또한 실화입니다. 어떤 엔지니어 팀의 팀장부터 말단 팀원까지 대부분이 희귀병에 걸려서 사망하거나 투병중이라는 사실이 반올림에 제보된 바 있습니다.
- 원고측 증인이 피고측 증인으로 '둔갑'하는 일은 없었지만, 증언을 약속한 원고측 증인이 사라지는 일은 있었습니다. 그분은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요? 또 원고측이 그토록 세우고자했던 '전문가 증인' 서울대 산학협력단장 백도명 교수는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증언대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영화적 장치였던 '결정적인 증언'을 통한 '승소'는, 실제 재판에서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증언대에 서서 유리하게 증언해주었던 원고측 증인의 증언은 '신빙성이 없다'는 한 줄만으로 증거로 채택되지 않아, '어린이집 다니는 원고'가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 개인적으론 '어린이집 다니는 원고' 정애정 님이 영화속에서 보다 충실히 다뤄졌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낭랑하게 말하다가 쌍욕이 나오는 대목에선 다들 빵터지죠. 고 황민웅 님과 정애정 님은 반도체 공장에서 사내연애를 통하여 결혼까지하고 현재 두 아들이 있습니다. 정애정 님이 반올림에 합류한 덕에 반도체 공장내부의 사정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고, 또 좌중을 휘어잡는 입담으로 언제나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하셨기 때문이죠...
- 반올림은 애당초에 '대책회의'형식으로 출범했고, 활동가, 피해자, 새로 결합한 활동가 등이 반올림의 이름으로 뭉쳤습니다. 현장활동에 경험이 풍부한 노동 활동가부터,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등 의사들, 학생들, 법조인들, 언론인들, 예술인들, 그리고 가끔 저처럼 어딘가 어리버리한 학생들, 연구자들, 저와달리 빠릿빠릿한 자원활동가들 등등. 그런 사람들이 조약돌처럼 힘을 보태서, 누구 한 명 빠져서는 절대로 지금의 모습이 나올 수 없는, 지금 그 모습이 정겨운 가족같은 반올림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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